퇴사를 한 뒤, 혼자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대구의 도동서원.
요즘 대구는 코로나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나는 차로 이동하기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선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멋지다고 한다.
낙동강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달리며 경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간 날은 안개가 심한 날이었고, 강변도로이다보니 더욱 심했다...ㅎㅎ..
그래도 멋졌다.
안개도 멋졌다. 퇴사를 해서 그런가..
도동서원 앞에 도착하니 안내판이 보였다.
저렇게 갈색으로 되어 있는 안내판은 볼 때 마다 뭔가 재밌는 것이 있을 것 같다.
표지판에는 대구 최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도동서원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실 서원이라는 곳은 조선시대에서 탄압의 대상이었다.
고종 시절, 흥선대원군은 사원 철폐령을 내려 47개를 제외한 모든 서원을 없애고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나라가 어려움에도, 일하지않고 서원에서 공부만 했기에, 국민과 왕의 분노를 샀다.
서원에서 공부하는 대신 정치싸움에 몰두하였다.
탈세와 재산은닉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등등..
하지만 그런 것들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나는 한옥 건축물이 좋고,
도시의 외곽에서 고즈넉히 자리잡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그 느낌과,
오래된 건물이 주는 웅장함이 좋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후세에도 알고, 이를 본보기로 더 나은 정치를 하는것이 중요하겠지..
그러나 이 사실을 현재 나랏일을 하는 분들은 잘 알고 계실런지 모르겠고,,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되 우리의 본분에 충실해야겠지.
그리고 이런 문화재들을 아껴주어야겠지..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들렀다.
ㅎ..ㅎ..
볼일을 마치고 나오다가 한번 찍었다.
좁지만 굉장히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이렇게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있고, 아래에는 거북이가 받치고 있었다.
요 근래 문화 유적지들을 종종 답사하며 다니는데, 경북 쪽은 처음 와봤고, 이쪽에서는 거북이가 비석 아래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른지역에선 보통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비석의 내용은, 뭐 열심히 배워 지식을 쌓아 나라에 좋은 역할을 하여라....
라는 내용인듯..
한문이 섞여있어 읽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뒷쪽으로 건물 2개가 보이는데, 왼쪽에 도동서원의 강당이고, 오른쪽의 태극기가 걸려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도동서원을 관리하는 분들이 일하시는 공간이 있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투리를 사용하시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안에서 뭔가 분주하게 하고 계셨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안갔다.
왼쪽의 강당으로 가는 방향에는 저렇게 관람로라고 써져있었다.
바닥에 철로 된 저 ㄱ을 좌우반전 해놓은 것들은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다.
수월루는 고종 25년에 소실되어 터만 남았다가 1973년(비교적 최근이네..) 복원되었다고 한다.
지붕 양식은 팔작지붕.
들어오니 보이는 강학영역? 의 모습이었다.
저기 가운데에 놓인 돌로된 교탁? 같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강의를 했나보다.
전체적으로 관리 상태는 좋아보였고, 건물이 주는 웅장함이 있었다.
좌, 우측에는 조그마한 건물 2개가 있어 ㄷ자로 형성이 되어 있었다.
동쪽, 서쪽 무슨 좌우 대칭으로 되어있는 건물인데, 유생들의 기숙사로 쓰였다고 한다.
이름은 거의재와 거인재라고 한다.
강당 뒤에는 사당으로 가는 문이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잠겨서 들어갈 수 없었다.
서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닌, 누군가를 기리는 공간으로도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데 기왕 관람하게 할거면 전부 다 하게해주지 왜 막아놓았지..? 복원중인가..
이후 나오면서,
항상 이런 유적지들에 가면 마지막에 체크하는 화재방지시설을 자체 검증하였다...
일단 계기판상 소화기엔 문제가 없었으나,
전문가들이 검사하는 점검표가 없었다.(모든 소화기에 다 없었다.)
뭐 이런식으로 되어 있는 점검표가 있고, 1년에 한번씩 교체해주면 되는거다.
누가 언제 점검했는지, 점검사항에는 저 많은 사항들이 있는데,,
점검표가 없으므로 나같은 일반인이 계기판만 본다고 이 소화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이 점검표는 안붙여놔도 되는것인지? 모르겠다.
찾아보니 점검표는 법적으로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소방기준 KFS 1000에 점검 주기가 명시되어있다고 함.
KFS 1000 : 제6장 점검,유지관리 및 총약
6.2.1 주기
소화기는 매월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 점검주기를 단축해야 한다.
1) 과거에 화재 빈도수가 높은 장소
2) 유해성이 높은 장소
3) 장난, 파괴, 무단 위치변경 등의 우려가 있는 장소
4) 도난우려가 있는 장소
5) 기계적인 손상을 받기 쉬운장소
6) 시각적, 물리적 장애가 있는 장소
7) 비정상적인 온도나 부식 우려가 있는 장소
8) 소화기의 특성상 약제누출 우려가 있는 장소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나, 특히나 화재에 취약한 이런 목재건축물을에게는 예외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게다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그냥 매달 점검만 하는 식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것일까?
아니면 공무원들이 와서 주기적으로 체크만 하고 기록은 않는 것인가?
궁금했다.
무튼 관람을 마치고 강당 좌측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한훤당 묘소라는 곳으로 올라가는길이 나있었다.
근데 800m를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뒤에 일정이 있었고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올라가진 않았다.
찾아보니, 한훤당 김굉필 이라는 분의 묘와 그 가족들의 묘가 있다고 한다.
성함이 특이하신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해서 26세에 생원시? 라는 시험 합격하고, 학문에만 정진하다 마흔에 벼슬을 얻었다고 한다.
마흔까지 처자식은 뭘 먹고 살았을까..?
무튼 그리고 연산군 4년 무오사화에서 김종직편에 서서 붕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평안도의 희천이라는 곳으로 유배되어 그나마 얻은 벼슬도 5년밖에 못하고 퇴출,
연산군 10년에는 갑자사화가 일어나고, 무오당인 이라는 명목으로
순천에서 50세에 사약받고 일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사실 지금 세대에서 보면 ... 기릴만한 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긴한다.
뭐 요즘도 대단한 일 하는 분들 보면 가족보다 일이 중요하니 뭐..
무튼 이분은 그때 당시 유학이 성리학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물꼬를 튼 인물이라고 한다.
거의 뭐 일평생을 공부만 하셨으니 이정도 성과는 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라에서 이분의 묘를 특별히 관리를 해주시나보다.
나도 업적을 세워 내 묘를 나라에서 관리해줬으면 좋겠다.
무튼 뭔가 생각이 많은 도동서원 답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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